고용희

김정일의 네번째 배우자

고용희(高容姬, 高英姬[4][5][6], 1952년 6월 26일[7] ~ 2004년 5월 24일)는 조선계 일본인 무용수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으로, 본명은 고희훈(高姬勳)[8]이다. 김정일과의 사이에서 김정철김정은, 김여정을 낳았으며 김정일의 네번째 아내이다.

고용희
기본 정보
출생1952년 6월 26일(1952-06-26)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쓰루하시
사망2004년 5월 24일(2004-05-24)(51세)
프랑스 파리
사인심장마비, 암
매장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대성산
국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본관제주
직업무용수
학력평양음악무용대학 무용과
부모고경택(부[1]), 이맹인(모)
배우자김정일
자녀김정철, 김정은(아들)
김여정(딸)
친척조부 고영옥, 큰아버지 고경찬[2], 여동생 고용숙[3]
활동 정보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간 이후에는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오사카시 이쿠노 출신이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가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2000년대에는 질병으로 프랑스를 방문하였고, 프랑스 의료진이 평양에 오기도 했으나 프랑스 파리의 병원에 입원한 끝에 사망하였다.

생애 편집

초기 활동 편집

1952년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이쿠노구에 위치한 이쿠노 코리아타운 부근의 쓰루하시(鶴橋)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기록에는 제주도 북제주군 출신이라 한다. 아버지는 1913년 8월 14일 제주 출생으로 1929년 오사카로 건너간 일본 동포 고경택(1999년 사망)이고, 어머니 이맹인, 여동생 고영숙의 4인 가족이었으며 1952년생으로 되어 있다.[9]일본 육군성의 지난 1939년과 1942년에 작성된 '육군관리공장 명부' 비밀문서에 의하면 고영희의 부친 고경택은 본 육군성이 비밀로 지정한 오사카의 '히로타 군복공장'에서 일하는 등 구 일본군 협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10]

1962년 재일조선인 북송사업 때 가족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건너갔다.[7] 1971년에 만수대예술단에 들어와서 무용가로서 활동했다. 만수대 예술단 무용단원으로 활동하다가 1970년 중반에 김정일의 아내가 되었다.[9] 이후의 행적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으며, 1998년 이후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중국,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언론에도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생애 후반 편집

2000년대 이후 유선암으로 치료를 받았고 2003년 이 재발, 사실상 완치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11]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고용희는 아들 중 한 명을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세우려고 장남 정남과 그 세력을 견제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12]

2003년 9월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건강이 더욱 악화됐으며, 그 해 프랑스 의료진이 극비리에 방북한데 이어 2004년에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종양 및 뇌 관련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11]

2002년 5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국가보위부장직을 맡게 된 김정남일본에 위조 여권으로 입국했다가 발각, 추방되면서 국가보위부장직에서도 해임되었다. 이때 일각에서는 고용희가 정남의 후계자 선정을 견제하기 위해 위조여권으로 일본을 방문한다는 정보를 흘리도록 했다는 설이 있다.[12]

고용희는 2004년 8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치료 중, 심장마비, 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그로부터 3개월 전인 5월경에 이미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13] 이후 공개된 묘비에서 2004년 5월 24일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14]

기타 편집

일부 언론에서는 고용희가 북송교포 출신으로 1960년대 북송되었으며, 북한유도의 창시자인 고태문(高太文: 1980년 사망)의 딸이라고 보도해 왔었으나, 2006년 12월 22일에 국가정보원은 고(故) 고태문씨의 전기를 출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고춘행(高春幸)씨는 고용희와 동일인이 아니라고 발표했었다.[15] 아울러, 고춘행은 1950년생으로 고태문의 딸이지만 고용희는 1953년생으로 고경택의 딸이라고 밝혔었다.[15][8] 김정일의 다섯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은 그가 자신의 아들을 돌보기 위해 발탁한 보모격이였다.[16][17]

2012년 6월경에 평양 대성산에 석조묘로 무덤을 조성했다.[18] 묘비에는 사진과 함께 "선군조선의 어머님 고용희"라는 문자가 한글로 새겨져 있다. 또한 "1952년 6월 26일 출생, 2004년 5월 24일 서거"로 생년월일과 사망일도 명기해 김정은의 모친임을 밝혔다. 이전까지 고용희의 실명은 북한에서 공표되지 않았었는데, 기존에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름이 고영희가 아닌 고용희인 것이 밝혀졌다.[19] 다른 한글 표기에 일본어 발음이 중첩되어서 온 혼선으로, 과거에도 김정은의 이름이 초기 일본 언론을 통해 김정운으로 잘못 알려진 바가 있다.

김정은의 고용희 우상화 편집

일본 산케이신문은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김일성이 김정은의 모친인 고용희가 재일교포 출신의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비밀 파티의 접대부였다는 점 등을 들어 김정일의 측실(첩)로 취급했다”고 전했다. 또 “고용희가 정은과 정철 등 아들을 낳았으나 김일성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봤으며, 김정은 등은 정식 손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20]

2013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고용희에 대한 우상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던 고용희의 동영상이 북조선 주민에게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21]

가계도 편집

김일성
金日成
1912~1994
김정숙
金正淑
1917~1949
홍일천
洪一茜
1942~
성혜림
成蕙琳
1937~2002
김영숙
金英淑
1947~
김정일
金正日
1941~2011
고용희
高容姬
1952~2004
김옥
金玉
1964~
김혜경
金惠敬
1968~
김정남
金正男
1971~2017
김설송
金雪松
1974~
김춘송
金春松
1975~
김정철
金正哲
1981~
김정은
金正恩
1984~
김여정
金與正
1988~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여자관계가 복잡했다고 한다.
  2. 부친, 큰아버지, 조부가 다 친일파였다.
  3. 2015년 탈북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실패했다.
  4. “≪새만금일보≫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 2016년 8월 11일. 2023년 7월 7일에 확인함. 
  5. “[추적] 죽은 고영희를 대신한 金正日의 네 번째 여자 정일선의 정체”. 2004년 10월 6일. 2023년 7월 7일에 확인함. 
  6. “[단독전재] 高英姬가 공개한「金正日과의 로맨스」”. 2006년 12월 30일. 2023년 7월 7일에 확인함. 
  7. 김정은 生母 고영희는 누구인가?《Daily NK》
  8. 김정은 생모 미공개 사진…"본명은 고희훈"《Daily NK》
  9. “데일리NK - 김정일의 여자관계, 수많은 희생 불러”. 2013년 12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7월 18일에 확인함. 
  10. 김정은 외조부 친일행적 日 극비문건 발견 2013-12-24 YTN
  11. "김정일 부인 고영희 지난 13일 사망" 오마이뉴스 2004.08.30
  12. <김정일 사망> `장군님 여인' 4명의 인생 연합뉴스 2001.12.19
  13. 김상협, "北 고영희 3개월전 사망"[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문화일보, 2004년 9월 1일
  14. 이종락, 北, 김정은母 고영희 묘 평양에, 서울신문, 2012년 7월 21일
  15. <국정원, `고춘행≠고영희' 거듭 확인>
  16. “김옥 … 고영희가 아들 돌볼 인물로 발탁”- 중앙일보 뉴스
  17. 김옥 관심 집중…"고영희가 아들 돌볼 인물로 발탁"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18. 윤일건, "北, 고영희 일본 태생 안숨기고 우상화", 연합뉴스, 2012년 10월 30일
  19. "北 김정은 어머니 고영희 묘비명은 '고용희'" 연합뉴스, 2012년 8월 2일
  20. [산케이신문]자료도 정확한출처가 없음. 北 김일성, 김정은 손자로 인정안했다” Archived 2013년 10월 31일 - 웨이백 머신 경향신문 2012년 2월 15일
  21. 윤설영, '김정일과 백마 타고…' 영상으로 본 김정은 생모, JTBC, 2013년 12월 20일

외부 링크 편집